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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으로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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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개는 평범한 사람들, 자기기만에 깊이 빠져 행동하던 사함들이 저지른 부정과 폭력이가. 이들은 자기기만에 빠져 행동하던 사람들이 저지른 부정돠 폭력이다. 이들은 자기기만에 빠져 흔해빠진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는 내 일을 했을 뿐이예요."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들이 나한테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154)

2. 진정성, 현실과 마주하기
진정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과거의 행적에 대한 책임을 끊임없이 회피하려는 사람이다. 자기기만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들은 사실성이나 순수한 초월로서 자신과 일치할 수 없는 자아의 무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 이들은 한계가 없는 , 혹은 거의 한계가 없다고 할 수 있는 자아의 자유와 더불어 이 자유가 의미하는 바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단순히 그 자신으로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자신이 무엇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알다시피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행동이 선택된 것이므로 그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선택한다해도 그것 역시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선택이다.(158)

진정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이 자기 자신과 일치할 수 없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냉혹한 현실과 마주한다.
진정성이란 "인간 현실을 자신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진정성이란 인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현실에 발 맞추어 살아가는 일이다.
우리가 실제로 자기 자신과 일치하지않는 자유롭고 책임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긍정하는 일이 극단적인 전향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현실을 자신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일 또한 자신을 대하는 태도, 어떤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대하는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159) 진정성을 획득한 인간은 자유를 부인하기 위해 자유를 행사하거나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하면서 자기기만에 빠져 행동하는 대신, 자유를  '취하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인정한다.
우리는 자유를 취하기 위해서 자신이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자신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떠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이 상황이 자신이 처한 상황이라는 사실, 이 상황이 사실성이며 이 사실성 안에서 자기 모습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불평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도망가는 방법으로 다신이 처한 상황을 거부할 수 있다. 실제로 삼십육계 줄행랑이 상책인 경우도 종종있다. 하지만 도망가는 일에도 선택이 필요하다. 이 선택은 새로운 상황을 만들고 선택해야 하는  또다른 요구를 낳는다. 자살을 제외하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다. 우리는 무엇보다 자유를 취하기 위해 자신이 그것으로 있다는 의미에서는 아무것으로도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하는 선택이 아니면 아무것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160)

진정성을 획득하는 일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든 자신의 상황-속-존재를 완전하게 자각하는 일이다. 또 상황-속-존재의 진정한 자각을 통해 우리가 한편으로는 상황을,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현실을 온전한 실존으로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이해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상황이 요구하는 것에 대한 참을성 있는 연구와 그 다음 상황에 자신을 던지고 그 상황을 '위해 존재하는' 자신을 정의하는 방법이 전제되어야 한다.
... 충실하게 군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폴은 시종일관 군인으로 있기를 목표로 삼고, 자신을 군대하는 상황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그 상황에 자신을 던진다. 진정한 폴은 군인으로 있다는 의미에서 자신이 군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자신이 실제로 군인이 아닌 다른 무언가, 현재 자신의 역할이 아닌 다른 무언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는 자신이 군인이라고 생각한다. 
진정성에 도달하고 싶다면 자기 행동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샤르스트는 이렇게 표현한다. "문제는 우리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변명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는 일이다.' ... 샤르트르는 교양 있는 파리 지식인이던 자신이 상황에 내몰려 어딘지도 모르는 장소에 있는 부대에 배속되었다는 사실에 불평을 늘어놓는 대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이 맏은 '군인' 임무에 후회없이 전념하여고 노력한 것이다.

3. 가치로서의 자유
"의지의 첫째 가치와 목표는 자신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이는 공허한 심리적 욕망으로 이해되서는 안 되며, 인간 현실의 초월적 구조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근원에 대한 욕망을 전부 떨쳐내려는 어떤 시도도 '니힐리즘'에 빠질 뿐이다. 근원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전부 떨쳐내려고 노력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정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신이 결코 자신과 일치하지 못하리라는 사실, 자신이 무엇인가 선택할 필요가 없는 일종의 '사물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진정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신과 일치, 실재성, 근원에 대한 욕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 뿌리를 지니려는 욕망, 자신의 근원이 되려는 욕망은 인간 의지에서 너무나 본질적인 속성이기 때문에 절대 떨쳐낼 수 없다.(165)

진정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자유에서 도망치려는 무익한 방식으로 자신과 일치, 실재성, 근원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대신 진정한 사람은 자신의 자유를 긍정한고 행사하는 일을 토대로 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실재성을 추구한다. 진정한 사람은 자유에 대한 긍정과 자유의 행사를 자신의 기본적인 원칙, 궁극적인 가치로 삼는다. 고정된 '어떤 것'이 되려는 헛된 희망으로 불가피한 자유에서 도망치려고 하기보다 그 피할 수 없는 자유와 함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167)

실재로 진정성의 기투를 통해서는 비진정성의 기투보다 일종의 실재성을 획득하기 쉽다. 우리는 진정성의 기투를 통해 실제의 모습, 즉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라는 모습과 조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비진정성의 기투는 결코 성취될 수 없는 객체의 세계와 일치하려는 노력을 통해 자시 실제 모습에서 도망칠 뿐이다. 자신의 자유에서 도망치는 사람은 근원을 수립하지 못한다.반면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취하는 사람은 그 자유 자체를 근원으로 수립한다. 자신의 자유를 위하는 사람은 있는 그래도 자신, 즉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자유를 취하는 사람은 자신이 결코 될 수 없는 존재, 즉 자유롭지 않은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으므로 실패할 리도 없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불변에 대한 욕망은 오직 자유를 끌어안음으로써 충족될 수 있다. 인간에데 변하지 않는 것은 자유롭다는 사실뿐이기 때문이다. 샤르트르의 말을 빌리자면 "그러므로 진정성은 근원이라기보다 가치다. 진정성은 실재성에 도달하기위한 수단으로서 자신에게 가치를 부여한다."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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