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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을 찾는 데에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관여하는데 우리는 그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확실한 원인을 찾아 고민하고, 한 번 세운 생각의 틀을 고집하며, 실제 일어난 일뿐 아니라 관계에서도 분 명한 답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특히 종교, 정치 에 깊게 몰두하는 사람들이 보는 세상이 그렇다.
이렇게 보면 사람의 마음, 관계, 인생의 선택과 같이 복잡한 문 제들은 하나의 확실한 원인을 찾거나, 분명한 진단을 하기 어렵 다. 원인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도리어 생각의 수렁에 빠지고, 헛발질을 하다가 위험에 발을 내딛게 될 때가 더 많다. 그러므로 이유를 알아내기보다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대부분 확실한 원인을 찾기 어렵다. 잘 모른 채로 모든 상황이 종결될 때가 더 많다. 그러니 너무 빨리 분명 한 답이나 원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면 실은 그것이 정답이 아 니라, 내가 그냥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가능성일 경우가 더 많다. 더욱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다 인생은 복잡한 방정식이라고 말하고는 한다. 멋진 비유이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방정식'이라는 말은 결국 풀 수 있는 문 제이고, 내 능력이 없어서 못 푸는 것이라고 오해를 부르는 말이 다. 그냥 잘 모르겠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그리고 그런 생 각이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든다.
인턴 시절 위암 수술을 하는 수술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외과 교수님이 환자의 배를 열자 넓게 퍼진 암세포 조직을 발견했다.
이런 경우에는 수술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항암이나 보조적 방사선 요법이 최선으로,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다른 방도가 없 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수술을 중단해야 했는데, 교수님은 갑 자기 수술을 시작했다. "밥은 먹게 해드려야지"라는 말과 함께였 다. 원인이 어떻든, 상황이 얼마나 나빠졌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오랜 임상 경험을 가진 외과 의사의 판단이 었던 것이다.
그렇다. 복잡하고 꽉 막힌 상태에 봉착했을 때 그냥 닫아버리 거나 주저앉는 것보다 "밥은 먹게 해야지"와 같은 태도가 필요 하다. 현재 해결가능한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원인 파악을 잘 해서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일단 뭐라 도 하면서 그 안에서 해결해나가다 보면 문제의 원인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생각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이다. 문제를 깔끔하 고 완벽하게 해결하기보다, 대응 가능하고 수용 가능한 수준으 로 바꾸기 위해 애쓰는 자세가 일을 할 때 더 중요하다. 현재 내 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실적인 최선이고, 이 상적 차선책이 된다.
인생의 문제는 답이 하나가 아니고 원인도 하나가 아니다. 인 생의 고민은 결국 풀 수 있는 고차방정식이 아니라 원래 답이 없 는 선문답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정답은 없다는 마 음을 가지고, 여러 개의 답 중에서 나쁘지 않은 하나를 선택하 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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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 씨는 주변에서 모두 착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어왔다. 누 가 발을 밟거나 커피를 새 옷에 쏟아도 화를 내기는커녕 웃으면 서 그저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었다. 남에게 화를 내는 것은 못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았다. 식당이 나 백화점에서 점원에게 한 번도 큰소리를 낸 적도 없고, 거래처 에서 황당한 실수를 해도 꾹 참고 좋게 대응을 했다. 스스로 못 난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덕분이
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크 트웨인의 말이 떠올랐다. "분노는 염 산과 같다. 염산을 뿌리는 대상보다 염산을 담고 있는 그릇에 더 큰 해를 끼칠 수 있다." 염산이 오래 고여 있다 보면, 담긴 그릇을 녹여버리는 것이다. 분노도 마찬가지이다. 진수 씨의 문제는 화 를 내는 것에 대한 과도한 죄책감과 그래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가치관에서 비롯했다.
인간은 생명체로서 자신의 생존이 최우선이어야 하고, 화를 내는 것은 본능적인 측면에서 필요한 대응이다. 산책하던 작은 강아지도 길을 가다가 낯선 사람이 귀엽다고 만지려고 하면 큰 소리로 짖으면서 이빨을 드러낸다. 사람이 자신보다 훨씬 크고 강한 존재이다. 하지만 이렇게 먼저 짖으면 사람은 만지지 않는 다. 강아지에게 낯선 이의 손길은 위험신호이고, 자기를 지키기 위해 크게 짖고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성을 표시하는 것이다. 죽 도록 싸우겠다는 목적이 아니다.
이와 같이 공격성, 즉 분노는 동물적 본능이자 나를 지키기 위 한 방어의 기능을 한다. 또한 먹고살기 위해, 그리고 집단 안에서 서열을 지키거나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해 더 안전해지기 위해, 짝 짓기에 유리해지기 위해, 내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공격성을 표 현하는 것은 생존의 측면에서 작동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두 가지 본능적 욕동을 성적 에너지인 리 비도와 공격성으로 설명했다. 그만큼 인간에게 공격성은 본능적 으로 탑재된 것이다. 그렇지만 공격성의 표현을 두려워하는 이유 는 자칫 한번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 고, 더 심한 경우 끝까지 내달려서 모든 것을 파괴해버릴 수도 있 다는 두려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이를 과도한 초자아의 억 제라고 설명한다. 마음 안에서 경찰의 역할을 하는 초자아가 과 잉 작동하다 보면 어느새 '어떤 상황에도 화를 내서는 안 돼''나 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기본 가치관이 작동한다.
그러다 보니 정당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나답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러니 내면에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나타나는 공격성을 초자아는 강력히 억제하고, 거꾸로 내 핵심을 향해 화살을 돌린 다. 결국 '못난 나 이것 하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호구로 규 정하게 되면서 속은 더욱 상하고 만다. 프로이트가 우울증을 "내 면을 향한 공격성"이라고 설명했는데, 외부로 총을 쏘지 못해 자 기 안을 향해 총질을 하는 형국이고, 결국 내 안의 자아는 내상 을 입어 너덜너덜해지고 만다
숨쉬기 어렵고 속쓰림이 생긴 진수 씨의 증상은 표현되지 않 은 분노가 내면을 긁어댄 결과물이었다. 진수 씨처럼 화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먼저 알려주고 싶은 것은 사람이 화 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물적 본능일 뿐 화가 난다고 해서 스스로 통제를 잃고 폭주하게 되는 것은 아 니다.
한 가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할 것은 화가 나는 것'과'화를 내 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내 안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 른다고 해서 바로 화를 내고 폭주하지는 않는다. 물론 어릴 때에 는 그럴 수도 있다. 다섯 살 아이라면 가게에서 갖고 싶은 장난감 을 사주지 않을 때 바닥에 드러누워 울고불고할 수도 있다. 하지 만 나이를 먹으면서 스스로 에너지를 조절하는 능력이 생기고, 웬만한 일에 미친듯이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통제력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너무 강한 재갈을 물리고 완전히 봉인
해버리는 것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화가 나서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 몸으로 느껴진다면 신호등 을 먼저 떠올려보자. 운전을 하다가 신호등에 빨간 등이 들어오 면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야 한다. 1분 정도 기다리면서 생각한다.
앞으로 더 갈지, 옆으로 갈지. 우리는 정글에 살고 있지 않다. 본 능적 분노는 포식자나 경쟁자가 내게 덤비는 상황에서 튀어나온 다. 하지만 현실의 삶은 정글에서 동물의 대응과 같이 1초 안에 도망치거나 맞서 싸울 일은 거의 없다. 그저 위험신호가 켜졌을 뿐이다. 동물적 본능으로 엄청나게 화가 난 나는 차 안에 있고, 정글이 아닌 도로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빨간 등이 켜진 상태에서 지금 여기가 어디이고,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 지 생각해보자. 신호등 색깔이 바뀌기까지 1분 이내의 시간을 그 저 바라만 본다. 그리고 노란 등이 들어오고 파란 등으로 바뀌면 서서히 속도를 내면서 내가 갈 곳을 가면 된다.
이때는 다른 차들과 같이 내가 가야 할 길을 내 속도로 갈 수 있다. 이 타이밍에 떠올릴 두 단어가 있다. 바로 '적당히'와 '적절 히다.
꼭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화를 내야 한다. 그러나 화를 '낸다가 아니라 화를 '표현한다로 바꿔보자. 화를 내는 것은 감 정을 드러내거나 물리적 행동을 하는 것으로 여기기 쉽다. 하지 만'표현한다'는 언어로 내 감정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일이 하기 싫습니다'와 같 이 화가 난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 파악하고 문제가 되는 지점을 말로 이야기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는 말하기가 아니 라 감정을 일으킨 사안에 대한 나의 태도와 요구를 상대방에 전 달하는 것이다.
거절하거나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나를 지키는 권리이자 의 무이다. 꾹꾹 참다가 난데없이 눈물을 흘리거나, 소리를 지르고 사표를 쓰면 다른 사람들이 "그동안 힘들었구나"라며 이해해줄 것 같지만 일반적으로는 "재 왜 저러지?"라는 소리만 듣기 쉽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다. 대부분 평소의 태도와 반응 만 알고 있지, 저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공감해온 사람은 드 물다. 그래서 보통 때 조금씩 내 감정을 표현하고, 부당함을 이야 기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길이다.
화가 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평소에 적절하고 적당한 수준 으로 표현하는 태도를 가져야 나를 지켜낼 수 있다. 그렇다고 해 서'전반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로 180도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아무나 만지게 내버려두다가 견디지 못한 강아지처럼 쓰다듬 던 사람의 손을 확 물어버리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다가오면 살 짝 피하거나 짖어서 만지는 것이 싫다고 미리 알려두는 것이 낮 지 않을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가 견딜 수 있는지 선을 그어놓는 것은, 내가 직접 해야 할 일이 지 누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 기능을 하는 것이 분노 반 응이다. 화는 나를 지켜주는 기능을 하는 것인데 화를 다루는 것이 무섭다고 마냥 억누르고 저 깊은 곳에 처박아두면 그게 결 국 나를 안에서부터 부식시킨다.
화를 내는 것도, 화를 억누르는 것도 에너지가 무척 드는 일이 다. 화를 폭발시키면 나뿐만 아니라 관계를 파괴하고, 세상을 다 무너뜨릴 것처럼 강한 에너지를 담고 있다고 우리는 무의식적으 로 인식하고 있다. 그 허상의 두려움을 억누르느라 에너지를 소 모해버려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기운이 없다고 느낀다. 이제는 그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생산적이고 내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말이다. 화가 나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 식하고, 화를 적당히 그리고 적절히 표현하면서, 억제하는 데 들 였던 에너지를 내게 도움이 되는 방향에 쓰는 것이 일하면서 나 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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