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아니 모든 생명체가 그 형태나 효율을 떠나 존엄한 까닭은 하나 밖에 없는 존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온라인에서 많은, 아니 거의 모든 오프라인에서 하는 활동이 온라인을 통해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지적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끼고 결국 현존하지 않는 이미지들이라 생각하게되는 까닭은 온라인 상의 오브젝트들이 무한 복사, 공유, 삭제 , 생성.. 등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닐까?
결국 교환 가치는 있을 수 있지만, 오브젝트 자체의 존재 가치는 아직 부재한 것이다. 언제든지 대체 가능하다는 존재론적 이유로 우리는 무의식 중에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는 것이다.
비트코인의 가치가 등락을 반복하는, 아니 모든 교환기치가 등락을 반복하는 까닭과 유사한 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의 존엄이 바닥을 쳤던 야생 또는 왕정의 시민주의(사회주의, 민주주의를 포함하는)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시민, 개인에 대한 지각과 존재의식이 필요했다.
그런 측면에서 온라인 환경에서의 http, block-chain 등이 사회 제도, 현상의 역할을, NFT는 지각, 의식, 기호학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요컨데 인류의 지각, 존엄성, 존재가치, 기호학의 역할을
메타버스의 NTC가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메타버스에 대한 키워드가 많이 다뤄지고 있다.
오프라인에서의 단편적인 상황과 행동이 아닌, 현실에서 벌어지거나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상황과 행동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메타버스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별반 다르지 않다. 몇가지 기능, 특히 vr이 추가되어 현실감이 개선되었지만 결국 현상에 대한 복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앞서 말했던 메타버스의 중개, 가상일 수 밖에 없는 현실세계를 NFT를 통해 현상 온라인에 생성된 무형의 오브젝트에 오브제와 같은 실존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종의 인식 또는 규격을 제공함으로써 그동안의 메타버스를 완성 시킬 수 있는 주요 요소가 된다.
NFT의 초기 형태가 디지털 오브젝트에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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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워지기·마흔의 생활코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