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까지 자고 싶은 만큼 잤다
그런데 편치않다
마음이 그러니 몸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쩨뿌등하다. 시원하지 않은 트름이 나온다
거실의 온도도 적당하고 공기청정기와 가습기는 제 할일에 열심이다. 창밖으로 햇쌀이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한 손으로는 거실 벽면에 놓여진 캔버스의 뺨을 어루만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서재의 책장에 손을 얹고 있다.
무심한 나는 그때까지는 그 빛을 보지 못했다. 마치 보는 것과 응시하는 것이 다른 것 처럼.
원두를 드르륵 드르륵 손으로 갈아내고 물을 끓이고 커피를 내렸다
커피향에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햇쌀을 떠난 후 였을 것이다. 문득 옛 사람이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뭔지 모르는 몽롱함과 뚜렷함이 휘몰아친다.
그리고 그제야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완벽하게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지금을 나는 왜 만킥하제 못하는 걸까
외부에서 주어진 역할과 그 관성에서 벗어나고자 셀프 휴직 기간을 선택했었지만 시간이 갈 수록 자유로움이나 자립적 의지는 점점 박약해져갔다.
돈이 없는 것도 누군가가 압박하는 것도 아닌데 뭔가에 눌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면 작년 직장 생활도 비슷했다. 멍석이 깔리고 원하는데로 할 수 있었지만 즐기지 못했다. 대전-천안, 세종-서울 이동은 고난이 아닌 그럴싸한 핑게가 되어주었다. 늘 쫒기고 늘 쪼아댔다. 성과는 코앞에 있었지만 나를 포함한 모두의 마음과 체력도 마지노선을 코앞에 두고있었던 것이다
다람쥐가 챗바퀴를 돌리는 그 짧은 순간 쾌감을 느끼지만 그 쾌감에 부응할 수록 관성은 점점 세진다. 멈추는 순간 그대로 고꾸라져 챗바퀴 밖으로 튕겨져 나가게된다. 하지만 어떤 다람쥐도 튕겨져 나가지 않는다. 단지 더이상 뛰지 못할때까지 달리다가 지쳐서 속도가 느려지면 그제서야 챗바퀴 밖을 나오게 된다.
인생이란 어떠한가- 챗바퀴를 자각하는 순간, 이미 늦은 것일 수 있다. 알아도 멈추지 못하거나 관성에 젖어 나가야 함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다가 스스로 힘에 부쳐서 속도가 잦아지고 나면 그제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멈추었다. 관성에 의해 달릴 수 밖에 없고 맘출 수 없는 일상이 되어버렸구나- 자각하는 순간 나는 멈추었다. 그리고 보란듯이 튕겨져 나가고 있는 중이다. 지독한 관성, 그 타성에 의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직장 생활이 아닌 직업 인생을 살고 싶어 선택한 길이지만 나의 몸과 달리 내 관념은 아직 챗바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토가 난다. 마치 카뮈의 이방인 처럼 철창에 갖친체 몽상에 빠졌다 나왔다만 반복한다.
몽상을 현실로 바꾸는 실마리를 잡지 못한체 판결일만 기다리고 있는 이방인의 신세가 되어버린 것 같다
늦은 아침 뉴스를 듣다가 우연히 역할상실 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어쩌면 나는 역할상실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했다. 작은 성공도 좋았다.
하지만 간신히 그런 작은 성공을 이루었을때도 허기짐과 공허함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무엇이 되지 못함은 성취감과는 다른 것 이었다.
무엇을 이루다. 가 아니라 내가 이룬 무엇이 어디에(누군가에게) 기여돠었다 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 그래서 사람, 사피엔스라고 라는 거구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풍족한 삶의 여간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누군가에 아떠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과정에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열 발자국보다 열 서람의 한 발자국이 낳다.(영화 말모이 중에서)
인공지능 컴퓨터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은 아니 사피엔스는 그렇게, 그런 목적으로 창조되었는가.
조물주들이, 자신의 피조물들이 서로 관계(역할 분담)를 맺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발전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에 대한 신비로움은 마치 우리 인간이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을 바라보며 느끼는 경의로움과 맥을 같이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보편적인 국가에서 태어난 사피엔스들은 학교, 직장을 거치는 거의 평생의 시간 동안 역할놀이를 하게 된다
존재 이유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존재의 이유는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한 사람의 신뢰만으로 충분할 것이고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여러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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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날들이 모여 멀어져간 오늘..·삼팔광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