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댓바람부터, 이 불안과 걱정은 과연 어디에서 오고 있는가.
끝난 줄 았었던 고민과 걱정과 후회가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날뛰고 있다. 귀도 같이 예민하다. 몸은 누워있는데 마음만 급하게 혼자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몸은 이불 아래로 더 깊숙이 움츠리고 있는데 자아는 이미 생각 안을 온통 휘집고 있다. 관찰자는 자아의 바지끄댕이라도 잡아보지만 이내 놓치고 만다. 손쓸 길 없이 바라만 보는 헛헛하고 막연한 마음을 한동안 지켜만 보다가 문득 알아차리고도 대안이 없자 속없이 염불을 외기 시작한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그렇고 이곳 저곳 헤집고 다니던 자아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며 잠시 멈춰 선다.
내가 너보다 가난하고 궁색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 가난과 궁색함으로 인해, 내가 너보다 불행하거나 불행할 수밖에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맞다. 나는 너보다 조금 더 불편하고 번거로운 절차와 인내할 것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더 어리고 부족했던 과거를 살아 낸 오늘의 나에겐 염두할 상황은 아니다. 이제껏 살아왔기 때문이다.
겨울이라 춥다 핑게를 대고 있지만 난 기거하고 있는 곳에서 누구보단 못하지만 누구보다는 훨씬 안락하게 살고 있다. 돈이 궁색해서 과거 인연을 원망하고 있지만 처분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와의 신뢰가 깨질 것을 우려하지만 사실 그 우려는 나의 몫인가 상대의 몫이겠는가를 가려보면 사실 할말이 없다.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시기질투. 어느 누구와도 분명히 내 것이라 합의한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욕심을 내는 바람으로 생긴 탐욕과 그 탐욕을 눈앞에서 채우지 못하는데서 기인한 성냄. 그리고 이 성냄이 일으키는 마음의 불안과 그 불안을 회피하고자 일으키는 시시비비가 있다. 결국 그 시시비비로 인해 나는 지금도 현재을 살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를 계속해서 방황하는 어리석음을 짓고 업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마치 허공과 온도와 바람은 그대로인데, 나 혼자 춥고 덥고 따뜻하고 시원하는 마음의 계절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한참. 문득 이런 생각도 인다.
어쩌면 불안과 시시비비에서 허우적 네고 있다는 이 사실만으로도 난 그래도 최악은 아닌 것이 아닌가.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최악이 아니니 더 최악을 상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말이다.
얼마나 가늠할 수 있겠냐마는, 법문에 보살은 몸이 아플 때 중생을 더 살피라는 말씀이 어쩌면 이와 비슷한 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처 알지 못한 고통과 상황을 겪음으로써 미처 몰랐던 중심의 아픔과 좌절에 동병상련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배경이 아닐까 한다. 들여다보고 관할 수 있는. 마치 어진 임금이 민심을 살피기 위해 신하 몰래 잠행을 나서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