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의 격차는 높아지지 않았다
빈부의 격차는 너 두꺼워졌을 뿐이다
달라진 점은
과거엔 꿈도 꿀 수 없었던 영역이
이제는 손에 잡힐 것 같은 영역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문제는 자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가
스스로의 자발적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
수입되었다는 점에서 발생하는 사이드 이펙트이다.
절대적으로 보나 상대적으로 보다 상황은 분명히
나아졌는데
옆집 사는 영수, 영철이보다
인터넷과 글로벌화로 인한 제임스와 팀보다
연봉, 학벌, 외모, 차, 집이 그들에 비해
‘내가 아는’ 그들에 비해 더 못한 것 같은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이다.
수입된 자본주의의 후폭풍은 세대를 거듭할 수록 저마다의 자발적 심화 과정을 밟게된다.
예컨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일을 더 잘하면 형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성과 중심주의가 아닌 인간의 상품화 수치화 정량화라는 불편한 진실이 포함되어있다.
또다른 예로는 돈이 많으면 장땡이다. 과거 유명하면 길바닥에 똥을 싸도 박수를 받는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는데 그 웃숩지만은 안은 구절이 수입된 자본주의 버전으로 현실화 그리고 일상화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하며 인정할 수도 있을 것 같다지만.. 문제는 우리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의식이다.
과거? 또는 얼마 전까지(또는 X세대와 M세대의 경우) 헬조선이라며 국내 여건과 정서를 외국의 그것과 비교하거나, 여혐, 남혐 갈등과 같이 성별에 대한 갈등이 발생했던 조직적- 또는 단체적인 단위의 ‘상대적 박탈주의’라 한다면 일련의 사건을 선행 학습하며 자란 아이들.. 이제 성인이되어 버린 Z세대와 알파세대들은 매우 개인적 박탈주의로 세분화되고 있는 것 같다.
어른들의 왜곡된 의식의 씨앗은 다음 세대에 이르러 싹?을 틔우게 되니.. 또래 문화자체가 상품화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또래 친구들이다. 최근 전거(전세거지), 빌거(빌라거지)라는 신조어들이 떠들썩하다. 동료 친구의 관계가 아닌 정량적으로 더 많거나 적거나이고. 뿐만아니라 상대적 가치가 높은 상품은 낮은 상품을 내키는데로 행동해도 인정이 되는 말도 안되는(혹 이미 누군가에게는 이미 납득이 될만한..) 시대에 이르렀다.
굳이
이런 뻔한? 하소연을 왜 늘어놓는가 하면..
사실 이 썰의 발단은 전혀 다른?, 달라보이는 지점에서 시작했다.
인공지능, 생성형 인공지능은 보통의 콘텐츠의 가치를 무력화 시킬 것이다. 보통 인간의 노동력은 이미 말할 필요가 없고 그 다음? 단계인 그냥 노동 또는 노동자 말고 현재 인간이 지향하고 이를 통해 부를 더 효율적으오 축적하려하는 그래서 전거 빌거 소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상대적 우위에 있는 지적 노동자 영역이 타깃이다.
인공지능은 분명 인류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보나 상대적으로 보다 분명히
더 나은 상황을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사회적 여건 그리고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이 보다 세부적이고 파편화된 그래서 인지하기도 어려워진 너무 당연해진 상대적 박탈감 처럼, 그래서 개인을, 아니 스스로를 그 어느 때보다 감시하고 처벌하는 현재의 상황이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그만큼 더 투명하고 쾌적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이전 상황을 가속화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보다 이해하기(편향을 버리고 직면하기) 쉽게, 내가 아닌 타자와 또는 사물화해서 보면.
1. 도로가 넓어지면 차들은 더 편하거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아니었다. 쾌적해질뻔 했던 도로 위로 더 많은 차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플라잉카? UAM의 고도화는 다를까?…)
2. 인터넷이 빨라지면 일처리가 빨라지니까 조금 더 빨리퇴근할까? 결과적으로 아니였다. 빠른 인터넷 속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은 일을 하게하고 더 많은 시간을 인터넷에 체류하도록 만들었다.
3. 스마트폰,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는 언제든 누구와 연결할 수 있으니 이제 맘편히 현실, 지금 내가 하려던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나? 아니다. 오히려 스마트폰은 지하철 운전 걸어가면서 신호등 앞, 신호등을 건널때 심지어 잠자리에서 까지 타인의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4. 인공지능. 생성형 AI는 인간의 일을 대체해 줄 것인가? 유명한 기업의 누군가는, 똑같지 않지만.. 이런 뉘앙스의 비슷한 말을 했던것 같다. 노동은 로봇이하고 인간은 또다른 지적 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글쌔..이다.
안타깝게도 과거 계급주의 신분주의, 왕족주의는 신분의 귀천을 만들고 억압과 탄압 그리고 심지어는 동물 취급을, 자행하는 이나 당하는 이가 너무 상식적으로 당연한 시대였다. 야만의 시대라고 해야할까?.. 비신사적 시대라고 해야할지..
그런데 지금은? 친애하는 민주주의 또는 자본주의.. 사실 자본주의라기보다… 신자유주의에 더 가까울 것 가 은 지금은? 단지 ‘동물’ 취급에서 ‘물건’ 취급으로 바뀐 부분, 특정 신분이 아닌 누구나로 바뀐(사실상 가해자와 이해관계자가 더 넓고 두터워졌다) 것 빼고는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사회와 어른들 뿐만아니라 학생과 유치원에서 까지 ‘물건(용도)의 쓸모‘로 사람에 대한 가치가 평가되고 관계가 형성되어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 속도가 더 빨라진다면..
사실 더 이상의 상상은 엄두가 나질 않는다.
사실 이런 상상의 여유도
마흔에 미혼이라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한다.
또래 마흔에 자녀가 있는 이들의 일상은 더욱 치열하고 다사다난할 것이다. 물론 자본과 사회적 관계는 더 더텁겠지만 그래서 이런 얘기는 역으로 더 현실감각이 없어보이겠지만..
또다시 역으로, 그런 사이 먼저 성장하고 있는 그들의 자녀들의 세상을 보며 언젠가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내 자녀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울 따름이다.
그래서 이런 뜬구름 말고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다시말하지만 수입된 자본주의. 그리고 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암기해서 경쟁하는 평범한 일상.
남들보다(상대적으로 돈을 더 들여) 선행 학습으로 경쟁 우이를 차지해서 성공한 경험의 누적.
이를 통한 (상대적) 명문대 입학. 인정. 하지만..
졸업 이후에도 5년전, 10년전, 때론 20년도 더 넘은 대학이름으로 자신의 (상대적)우위를 인정받고 보상받고 싶어하는 심리 (*사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의 불안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시작해서 발생한 문제들. 학문자체에 매달린 진짜 학자들은 오히려 열려있음)
상대적 우월주의, 상대적 박탈주의 를 기반으로하는 기회주의..
어른 스러움은 개나 줘버리고
원 포 더 머니 투 포 더 쇼가 되어버린 상황.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난 무슨 답이 있냐고?
답이라..
임마. 수능 끝난지가 언젠데 여태 답 타령이냐..
답을 찾기 전에 문제부터 잘 읽어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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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날들이 모여 멀어져간 오늘..·마흔 넘어의 아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