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BTS, 이은미 등 가수들의 활동을 보면서
노래는 무엇이고 가수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것은 무엇이었고 그들은 누구였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잠깐 그전에,
산업시대 소위 분업 또는 공장이라 불리운 생산 플랫폼은 인간이 하고 있던 그 동안의 모든 활동 그리고 역할들에 대해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일련의 것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시스템으로 인해 전세계에 확장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거래와 존재의 상식이 되었다. 그 상식에 반하는 경우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 상식을 기반으로 경쟁관계가 협업의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시대, 인터넷은 새롭게 재정의된 인간의 역할과 활동들의 촉매재가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더 가속화하고 더 세분화되고 더 글로벌화되어, 최근엔 서구보다 더 서구적인 동양의 문화가 조성되고 동양보다 더 동양적인 가치관이 서구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와 중에 소위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났다. 그리고 한동안 재정의되었던 인간의 역할과 활동을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상 또는 이념으로만 가능했던 개념들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발달을 기반으로 하나 둘 적용되고 있다.
심지어 신자유주의 경제 시장과 경쟁 시스템 안에서도 인터넷환경, 인공지능 또는 이 기술을 기반으로 연개된 IoT 환경으로 인해 경재활동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던 개인의 시간과 역량이 (좋게 표현하자면) 절약되기 시작했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유야 어떻든, 이렇게 발생된 개개인의 유휴 시간들은 누군가에겐 공포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창의력과 창조의 원천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과거와 달리 경제적 사회적 지휘의 차이가 아닌 삶의 이유 또는 존재 존엄의 차이로 발현될 것이다.
이러한 큰 흐름에 앞서 아주 작은 단위의 사소한 변화들이 시작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기존의 가치를 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는 준비되지 않았었고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덕분에 이러한 이들은 고난의 연속이거나 저항자, 부적응자 또는 이방인으로 취급받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사회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선택의 결과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적 선택과 그 결과, 개인의 선택과 그 결과들을 통해 대중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건전한 가치를 받아들이고 옹호하고 또한 자발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노래는 단순히 듣는 사람에게 여흥(쾌락, 기분좋음, 긍정적 감정)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노래는 한 시대에서는 역사로서의 책 역할을 했고 다른 시대에서는 모두가 소원하는 염원을 이루기 위한 간절한 기도였으며 대중의 생각 또는 정치적 의도를 반대편에게 전달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러한 노래가 신자유주의 시대 돈을 위한 용도로 재정의 되기 시작했다. 돈을 버느라 지친 현대인을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위로하기 위해, 기존의 의미와 역할 중 거창한 것들로 치부로 취급되어 잘려나가고 흥 또는 쾌락의 용도로 최적화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노래뿐만아니라 다방면의 카테고리가 동일한 패턴을 지녔고 다시금 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과도기를 살고 있는 우리(또는 나)는
이러한 과도기에 생존해야하는 서비스(또는 PM)는
과거의 지식과 상식의 기준과 프로세스에 의문을 재기해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