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ck to feed
🌐Original in Korean. An English translation isn't available yet, so the Korean original is shown.

김어준과 유시민에 반대합니다.

NS
normalstory
cover image

별거 아닌 블로그에 누구도 안 들어올지 모르지만.. 그래도 중립은 안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어디에든 표현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제는, 김어준과 유시민의 주장과 의견에 반대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방관보다 잔인한 위선, 부조리 앞의 ‘중립’이라는 비루함에 대하여

우리는 흔히 갈등 상황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말을 공정하고 객관적인 미덕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학교 폭력이나 사회적 부조리처럼 명백한 도덕적 가치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도 중립이 미덕이 될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의 중립은 가장 계산적이고 비겁한 선택이 되곤 합니다.

기권과 중립의 결정적 차이

부조리 앞에서 기권은 두려움이나 무기력함 때문에 행동을 포기하는 소극적 후퇴에 가깝습니다. 자신이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을 인정하는 비겁함입니다.

반면 중립은 다릅니다. 중립은 "나는 양쪽 모두의 편을 들지 않는 공정한 사람"이라는 도덕적 가면을 씁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 폭력의 현장에서 중립을 선언하는 것은, 폭력을 행사하는 강자와 고통받는 약자를 동등한 선상에 두겠다는 기만입니다.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라는 위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은 "중립은 가해자에게만 도움이 될 뿐,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있을 때 침묵하고 중립을 지키는 것은 가해자의 폭력을 제지하지 않고 방조하는 행위입니다. 결국 중립이란 "사실상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라는 계산기를 두드리면서도, 겉으로는 도덕적 비난을 피하고 싶어 하는 거대한 위선입니다.

무기력한 방관을 넘어선, 존재의 비루함

단순한 무기력함으로 눈을 감는 방관을 넘어, 스스로를 '공정하다'고 포장하는 위선은 결국 인간으로서의 존재적 비루함으로 커지게 됩니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정의의 저울을 왜곡하고,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태도가 습관이 될 때, 우리는 스스로의 존엄성을 갉아먹게 되기 때문입니다.

단테가 그의 저서 《신곡》에서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고 경고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약자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는 것, '중립'이라는 달콤한 핑계 뒤로 숨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최소한의 품격을 지키는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친절한 찰쓰씨
Written by
친절한 찰쓰씨

Pleasant Charles — UI/UX researcher at AIT. Keeping notes on design, planning, and slow days here since 2010.

More on the author's pa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