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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ewal·문장 발효 과학

디지털 기술과 혁신에 대한 논고(지탱하는 힘)

NS
normal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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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p

실재하고, 계측 가 능하며, 상대적으로 드문 실질적인 혁신과 달리, 혁신-언어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관한 과대광고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 혁신-언어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것은 기회와 창 의성과 무한한 미래를 말하는 낙관론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공포의 수사(13월)에 가깝다. 그것은 우리가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이 용한다. 이러다가 우리 나라는 세계 경제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 할 거야. 우리 회사는 시장에서 밀려나고 말 거야. 우리 아이들이 코 딩을 배우지 않는다면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없을 거야. 인텔의 창업 자 앤디 그로브는 1996년에 출간한 저서인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Onl the Paranoid Survive)』라는 제목에서 이러한 감정을 명료하게 제시했다." 혁신-언어는 끊임없는 우려의 방언이다.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혁신-언어는 혁신이 선험적으로 좋은 일이라는 잘못되고 숨겨진 전제 위에 놓여 있다.

42p

오늘날과는 달리, 1960년대에 혁신을 말하는 보고서들은 낙관론에 흠뻑 빠져 있었다. 당시 미국은 경제 호황으로 세계에서 부동 의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 총재 릴런드 하 워스(Leland Haworth)는 1966년에 열린 한 학술대회의 참가자들 에게 "우리는 미국의 산업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열쇠를 알고 있 습니다. 미국에 뒤떨어진 다른 나라들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기술 진보의 속도가 떨어지고 인구가 급증하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이 만족 스럽지 못한 삶의 질을 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 다”" 부엌 논쟁에서와 같이, 미국은 혁신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못했다.

기술 혁신에 대한 숭배는 곧 약발이 떨어졌다. 1973년 무렵부 터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은 경제 불황에 들어섰다. 하강 곡선 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고, 경제학자들은 지금까지도 그 원인에 대 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 1973년 석유 수출국 기구(OPEC)의 석유 금 수 조치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고, 이는 생산과 소비에 큰 부담이 되었다. 사기 및 부정부패로 문을 닫는 은행이 생겨나 금융권을 뒤 흔들었다. 경제학자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현상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을 수밖에 없었다.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경제 성 장은 침체되어 있었던 것이다.

경기 침체는 1970년대 들어 미국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일반 적인 생각과 잘 맞아떨어졌다. 미국의 영혼은 베트남 전쟁으로 잠식 되었다. 미국의 도시는 스모그와 쓰레기로 그득했다. 랠프 네이더를 위시로 한 활동가들은 전후 성장을 이끈 대기업들의 파괴적이고 비 윤리적인 행태를 비판했다.™ 마틴 루서 킹과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 당했고, 민권운동 역시 예전같지 않았다. 한때 '부엌 논쟁'을 벌일 정 도로 전후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던 닉슨은 저널리스트들이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폭로하자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 이 모든 격변의 와중에 '진보'라는 단어는 빠르게 없어지고 그 자리를 '혁신'이라는 개념이 차지하게 되었다. 혁신은 미국 사회 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하는 고통을 빼고서도 변화의 이상 을 말할 수 있는 유용한 말이었다. 하버드 대학의 역사학자 질 르포 어가 표현하듯이 "혁신으로 진보를 대체함으로써 새로움이 진정한 개선인지 여부가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세상은 점점 나아지 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장치들은 나날이 새로워진 다” P 진보는 항상 어떤 의미에서든지 사회를 개선한다는 의미를 포 함하고 있었다. 1890년대 진보주의 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진보 는 정부와 정책을 활용해 시민들의 사정을 더 낫게 만들려는 것을 의미했다. 반면, 혁신의 옹호자들은 기술 변화와 그에 수반되는 새로 운 산업 부문이 스스로 사회적 재화를 (간접적으로나마)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 듯했다.

1970년대의 미국 사회가 진보라는 거대한 이상에 부응하지 못 했더라도, 어쩌면 기술을 통한다면 자신의 위대함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러한 서사는 일부 집단에서 받아들여질 만한 것 이었다. 그리고 이런 서사는 여전히 이어져서, 애플과 아마존같이 성 공한 거대 기업에게는 놀랄 정도로 낮은 세율을 매기는 정책을 뒷받 침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경제학자, 사회학자, 역사학자들은 이 이 야기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다. 우선, 1990년대 중반 이 되자 이들은 급속한 기술 변화가 일어났다고 알려진 시기에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혁신의 과실 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13

또 다른 생각의 흐름은 기술이 정말로 그토록 빠르게 변화했는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Robert J. Gor-don)은 1990년대 후반에 이 질문을 던졌고, 이후 2016년에 출간한 책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The Rise and Fall of American Grout)』 를 통해 1970년대 이래 가장 인상적인 기술 발전은 오락에 초점을 둔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비롯한 디지털 플랫폼에 집중되었다고 주 장했다.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새로운 장치에 환호했다. 하지만 고 든은 이것들이 1870년과 1970년 사이에 등장한 여러 기술 발전에 전 혀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전기, 도시 위생(상수도와 하수도), 제약 및 화학(플라스틱), 현대식 건축 재료(콘크리트와 철 강), 교통(자동차와 비행기), 컴퓨터, 전자, 현대식 통신 체계 등을 생 각해 보라. 다른 경제학자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근본 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1970년대 이전에 이 미 만들어진 기술을 재탕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디지털 기술이 경제적 생산성에 얼마나 이바지했는지에 대한 고든의 주장을 둘러싸고 현재 많은 학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누가 옳은지 밝혀지지 않았고 토의는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지적하려는 것은 1970년대 후반이 되 자 경제학자와 정책 결정자들은 생산성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었고, 이러한 불안감은 그 이후 우리가 혁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결정지었다는 점이다.

친절한 찰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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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찰쓰씨

Pleasant Charles — UI/UX researcher at AIT. Keeping notes on design, planning, and slow days here sinc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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